정성룡 향한 원색적인 비난, 거듭되는 악습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12, 4위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대한민국의 월드컵은 막을 내렸다. 홍명보 감독은 대표팀 선발부터 전술, 선수운용 등 전반적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고 결국 월드컵 최악의 성적만 남긴 채 브라질을 떠나야 한다.

 

선수기용부터 전술, 경기 중 선수교체까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홍명보 감독은 여론의 비난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대표팀을 이끌었다. 비록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대표팀 감독으로서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소신껏 팀을 이끌고 간 것은 잘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모든 월드컵 경기는 끝났지만 선수들을 향한 비난은 계속되고 있다. 대표팀 전체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그 중에서도 부진한 선수를 추려서 집중적으로 비난과 악플을 쏟아낸다. 마치 연례행사처럼 말이다.


▲ 월드컵 이후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오범석, 이동국과 현재 비난을 받고 있는 박주영, 정성룡

 

2006 독일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전에서 부진한 오범석,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결정적인 득점찬스를 놓친 이동국이 그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이번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정성룡과 박주영을 향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원색적인 비난으로 도배된 정성룡의 미니홈피


자국 선수가 부진하거나 큰 실수를 저지르면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하고 비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국내 팬들은 해당 선수의 SNS 계정에 욕설을 비롯해 축구선수 관둬라, 대한민국의 수치다, 조기축구 아저씨보다 못한다등의 원색적인 비난과 악플은 문제가 있어보인다.


▲ 각종 비난으로 도배된 인터넷 스포츠 뉴스 댓글들


각종 유머사이트와 포털사이트를 타고 물타기 식으로 너도 나도 선수들을 조롱하고 비난한다. 선수들에 대한 비난은 오랫동안 끊임없이 지속되며 해당 선수에게는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기이한 악습이다.

 

축구 선진국들이 많은 유럽의 경우는 우리와 조금 다르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을 하나 예로 들면 2006년 독일 월드컵, 프랑스대표팀의 이야기다.


당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결승전은 양 팀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다. 트레제게는 자국 프랑스가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도 있었던 중요한 순간에 페널티킥을 실축했고 결국 트레제게의 실축으로 2006 독일 월드컵 우승컵은 이탈리아에게 돌아갔다


트레제게는 자신 때문에 프랑스가 우승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했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프랑스 대표팀이 귀국 하던 날 프랑스 국민들은 대표팀을 환영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경기 이후 처음으로 국민들과 마주하는 자리,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자신은 환영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과 미안함에 트레제게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프랑스에 입국한 선수들은 모여있던 시민들 앞에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고 프랑스 국민들은 선수들이 등장할 때마다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곧이어 트레제게가 등장하자 프랑스 시민들은 최선을 다한 트레제게를 위해 한 마음으로 트레제게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 페널티킥을 실축한 자신에 대한 격려에 참아왔던 눈물을 보이고 마는 트레제게


페널티킥 실축 이후에도, 자국 언론들의 공격적인 인터뷰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트레제게는 결국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국민들 앞에서 미안함과 고마움에 하염없는 눈물을 쏟을 수 밖에 없었다.


프랑스 대표팀의 이야기를 보면 참 부럽다. 아마 트레제게의 상황이 한국 선수에게서 나왔다면 과연 우리 국민들이 실수한 선수에게 성원을 보내줬을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미 경기는 끝났고 지난 일에 대한 잘잘못을 따져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언론과 네티즌들의 비난이 거셀수록 다음에 국가대표 마크를 달고 뛸 선수들의 중압감만 커질 뿐이다.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서도, 먼 곳에서 고생한 우리 선수들을 위해서도 악플과 원색적인 비난 대신 격려의 성원으로 따뜻하게 선수들을 맞이할 수는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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